목차
서울시는 최근 ‘문 닫은 파출소’와 같은 공공시설을 활용한 토큰증권(부동산 조각투자) 모델을 도입하며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시민이 소액으로 부동산 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혁신적 실험이다. 땅과 벽으로만 읽히던 부동산이, 디지털 혁명을 타고 대중의 손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토큰증권: 디지털 자산의 탄생
“부동산 투자, 다 큰 돈 없으면 그림의 떡 아니냐?” 몇 년 전만 해도 대다수의 인식이 이랬다. 아파트 한 채, 상가 하나를 사려면 수억에서 수십억까지 현금이 필요했던 시절. 그러나 기술이 세상을 바꾸면서 작은 조각에 투자하는 ‘조각투자’가 탄생했다. 토큰증권(증권형토큰·STO)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자산을 여러 개의 디지털 토큰으로 쪼개 투자자별로 분산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실물 자산, 특히 고가의 부동산이 디지털화되어, 소액 투자자도 ‘한조각(토큰)’을 소유하고 임대료 등으로 배당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됐다.
블록체인 덕분에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거래의 신속성 및 안전성이 크게 높아졌다. 더 이상 창구에서 서류에 도장 찍으며 긴 줄을 설 필요 없이 모바일 앱에서 클릭 한 번으로 실물 자산의 일부를 가질 수 있다.
“조각투자”와 토큰증권: 정의와 구조
조각투자란 말 그대로 큰 자산을 여러 개의 작은 단위로 쪼개 소액 투자자가 참여하는 투자 방식이다. 주식처럼 일정 수량의 증권을 나눠 발행하고, 투자자는 자신이 가진 분량만큼 수익과 매각차익을 얻을 수 있다.
- 토큰증권(STO): 증권형 토큰 오퍼링(Security Token Offering)의 준말. 법적으로 증권으로 취급받는 자산을 블록체인 상에서 토큰화(디지털화)하여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
- 운영 구조: 실물 부동산을 기반으로 신탁사가 자산을 관리, 토큰으로 나눠 투자자에게 배분. 임대수익, 매각수익 등은 토큰 보유자에 배당.
- 장점: 소액 투자 가능, 거래의 투명성, 실물 자산 연계, 시장 접근성 확대.
법적 쟁점과 제도화 과정
토큰증권의 등장으로 한국에서도 관련 법·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2-2023년을 거치며 금융위원회, 국회 등에서 증권형토큰에 대한 기본적인 법적 정의와 투자자 보호장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2023년 금융위원회 발표: 증권형토큰이 기존의 전자증권과 구분되는 독립적 자산임을 명확히 했다. 민간 실물 자산, 부동산, 예술품 등 다양한 기초자산에 토큰증권 도입을 허용.
- 투자자 보호: 증권형토큰은 자본시장법, 전자증권법상 규제를 받으며 발행·유통 전반에 대한 감독이 이루어진다. 정보공시, 투자자 자산관리, 신탁회사 역할 강조로 배당 및 매각수익의 투명한 배분이 보장됨.
- 시장 현황: 민간(신도림 핀포인트타워, 대전 하나스타트업 파크 등)에서 이미 토큰증권 방식의 부동산 유동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됨.
서울시의 시범사업: 공공자산 + 시민참여
2025년, 서울시는 드디어 ‘공공자산’ 영역까지 이 기술을 확대 적용한다. 지난달 부동산 수익증권 유통 플랫폼 ‘소유’로 유명한 루센트블록과 MOU를 체결하며, 사용하지 않거나 임시 활용 중인 폐파출소 두 곳(상도5치안센터, 신사1치안센터)을 활용, 부동산 조각투자 시범사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후보지 이야기: 상도5치안센터와 신사1치안센터
도심 한복판, 나름 역사를 간직한 폐파출소 건물. 오랜 기간 비어 있거나 임시 임대에 머물러 있던 공간. 주민들에게는 때로 ‘흉물’ 혹은 ‘노후 시설’로 보였을지 모른다. 서울시는 이런 시설을 도심형 미니창고, 공유 오피스 등 수익성 높은 모델로 재개발해, 수익과 개발이익을 시민투자자가 나눠 갖도록 설계했다.
이곳에 토큰증권이 도입되면, 시민은 최소 단위로 투자에 참여하여 매달 임차료 등 배당수익을 받을 수 있고, 향후 매각 시 매각수익도 얻는다. 서울시는 공공자산을 신탁·공모를 통해 세입증대와 가치 제고, 시설노후화를 개선해 환경개선까지 꾀하게 된다.
디지털 전환 속 시민참여의 의미
서울시가 토큰증권 시스템을 도입하며 강조하는 것은 “시민참여형 동행개발 모델”이다. 민간기업의 개발이익 독점 대신, 시민이 직접 공공자산의 가치를 공유한다. 이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 투명성: 블록체인으로 운영되는 토큰증권은 누구나 투자내역, 배당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 공공성 유지: 단순 민간개발이 아닌, 서울시가 직접 사업을 계획·운영함으로써, 지역주민 요구와 환경개선 등 공공 목적이 실현된다.
- 소득·재산에 무관한 참여: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어, 자산격차 해소 및 투자자 저변 확대가 가능하다.
최근 국내외 사례와 사업 전망
앞서 민간 부동산 유동화 시장에서는 이미 토큰증권 방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신도림 핀포인트타워, 성수 코오롱타워, 대전 하나스타트업 파크 등이 대표적이며, 루센트블록과 같은 디지털 유동화 전문업체가 기존 부동산을 분산 소유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리츠(REITs) 시장, 부동산 펀드 등이 이미 디지털화 단계에 진입했다.
서울시의 시범사업은 연내 구체적 사업계획(안) 마련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공모가 시작된다. 시민 참여가 잦아들면, 이 모델은 다른 자산(공공유휴지, 구청 청사 등)에도 확대될 예정이다.
‘내 집 한 칸’의 꿈, 현실이 되다
이런 변화를 통해, “부동산 투자는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누구나 폐파출소의 0.01%라도 소유할 수 있고, 공간의 변화와 수익을 함께 경험한다. 직접 투자한 공공자산이 지역 발전에 쓰이고, 삶의 질로 돌아오는 경험은 무엇보다 값지다.
스토리텔링: 어느 투자자의 하루
임훈 씨(가명)는 평소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았지만 목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가 폐파출소를 활용한 조각투자 소식을 접하고, 스마트폰 앱으로 ‘상도5치안센터’ 소액투자에 참여했다. 임씨는 매달 임차료 일부를 배당수익으로 받고,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토큰 가격이 오르자, 실현손익까지 챙겼다.
임씨는 “내 투자로 지역의 폐시설이 미니창고로 재탄생해 동네가 깨끗해지니 보람이 크다”며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공공자산의 가치를 직접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과 제언
- 부동산 토큰증권 시장이 성장할수록, 규제 정비와 더불어 시민 교육이 중요하다. 위험성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 장기 투자와 리스크 관리: 부동산 시장 특성상, 토큰의 가격 변동성과 장기 투자가 요구될 수 있다. 투자자는 프로젝트의 신뢰도와 운영사의 투명성을 점검해야 한다.
- 사업 대상 다양화: 이번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학교, 공공유휴지, 철도유휴부지 등 더 다양한 자산에서 조각투자가 확대될 전망.
마무리
서울시의 토큰증권 시범사업은 도시 공간과 시민의 연결, 디지털 자산과 사회적 가치의 결합을 실험하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전통적 투자 경계를 허물고 시민이 미래 공간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 공간의 가치를 시민과 공유하는 이 모델은 앞으로 한국 도시개발, 그리고 부동산 투자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것이다.